- 평범한 아버지, 시대를 마주하다
- 진실을 기록한 외신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 광주의 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광주의 시간을 달리던 한 남자의 핸들, 우리 모두의 이야기
1980년 5월, 광주는 고립됐다. 외부와 단절된 채,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학살의 현장이 되어 있었다. 군부정권은 진실을 가리고,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일 외신기자 힌츠페터와 그를 태운 서울의 한 택시운전사가 이 모든 침묵을 깨뜨렸다. <택시운전사>는 바로 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나 역시 ‘그 시절의 기억’이나 ‘역사의 무게’보다는 그냥 송강호 주연의 감동 실화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가 얼마나 이 이야기를 몰랐는지, 또 외면하고 있었는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택시운전사>는 ‘그땐 그랬지’ 하고 넘기기에는 너무나 생생하고, 아프고, 무엇보다도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영화의 주인공이 군인도, 정치인도, 운동가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그냥 택시를 몰고 서울에서 생계를 이어가던 평범한 아버지였다. 오로지 밀린 월세와 딸의 학비만을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김만섭. 그가 우연히 독일 기자를 태우게 되고, 10만 원이라는 거금에 끌려 그와 함께 광주로 향한다. 그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그냥 ‘가장’이 아니다. 그는 목격자가 되고, 진실의 운반자가 되고, 결국에는 행동하는 시민이 된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며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각성’이었다. 김만섭이라는 인물이 거창한 사명을 안고 출발한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정의감에 불타올랐던 것도 아니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 내린 선택이었고, 도중에는 두려워 도망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결국 광주의 참상을 목격하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나는 인간의 본질적인 양심과 용기를 보았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김만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거대한 정의 앞에서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고, 너무 두려워 행동을 미루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움직였고, 그 한 사람의 선택이 역사를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보지 않으려는 자’와 ‘보여주려는 자’ 사이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런 싸움 속에서, 진짜 영웅은 거창한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에서 눈을 뜨고 발을 디딘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걸 이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해준다.
이제부터 <택시운전사>가 나에게 준 울림을 세 가지 주제로 나눠 이야기해 보려 한다.
1. 평범한 아버지, 시대를 마주하다
김만섭(송강호 분)은 정말 평범한 사람이다. 그는 고지식하고 약간은 무책임하고, 현실에 찌든 가장의 얼굴을 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 전세금을 밀리며도 아이 학비를 챙기고, 아내 없이 홀로 딸을 키우며 택시를 모는 사람. 그런 그가 어느 날 외국인을 태우고 광주까지 가는 임무를 맡게 된다. 10만 원이라는 당시로선 거금. 그것만 보고 무작정 차에 태운다.
광주에 처음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그는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모른다. 외지인으로서, 그리고 서울 시민으로서 광주에서 벌어지는 일이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서 목격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총을 든 군인들, 쓰러진 시민들, 도망치는 학생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
그 순간부터 김만섭의 눈빛이 달라진다. 그는 망설이고, 도망치고, 주춤하지만, 결국 돌아선다. 그리고 끝내 힌츠페터를 다시 광주로 데려가고,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서울까지 무사히 보내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이 변화는 사실 굉장히 인간적이다. 처음부터 정의로운 사람보다, 두려워도 행동하는 사람이 더 강한 울림을 준다.
나도 솔직히 말하면, 김만섭과 비슷한 지점이 있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처음엔 외면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나 하나쯤은’이라는 생각.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순간 나도 함께 책임을 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후회가 밀려온다.
그래서 김만섭이 마지막에 힌츠페터를 웃으며 배웅하고, 딸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그렇게 뭉클했다. 그는 더 이상 그냥 가장이 아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시대를 목격한 사람, 그리고 양심의 선택을 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2. 진실을 기록한 외신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이 영화가 더 깊은 울림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진짜 실존 인물이 주인공이었다는 점이다. 바로 독일의 외신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그는 광주의 진실을 세상에 알린 유일한 외부인이었고, 당시 정부의 강압적인 통제 속에서도 끈질기게 카메라를 들었다.
힌츠페터는 단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온 게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진실을 알리는 것의 무게와 필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보이는 그의 태도는 매우 절제되어 있다. 그는 감정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지만, 그 눈빛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특히 카메라를 뺏기지 않기 위해 김만섭과 함께 사투를 벌이고, 공수부대의 검문을 피해 도주하는 장면은 단순한 긴장감을 넘어선 진심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본 것에 책임을 지고자 했고, 그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광주의 진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장면들을 보며, 기자라는 직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단지 기사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존재라는 걸 힌츠페터는 증명했다.
또한 그는 김만섭이라는 평범한 사람의 도움 없이는 그 일을 이룰 수 없었기에, 진실은 혼자선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도 함께 보여준다.
이 영화는 힌츠페터를 과도하게 영웅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그리고 담담하게 그를 그려낸다.
그 조용한 진심이 오히려 더 오래, 깊게 남는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그가 남긴 영상 기록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실제로 그가 촬영한 필름을 보며 역사의 무게가 단지 영화 속 연출이 아니었음을 다시 실감했다.

3. 광주의 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광주의 참사는 단지 한 지역의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침묵했던 순간의 기록이고, 아직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역사다.
<택시운전사>는 광주의 상황을 잔혹하게 묘사하진 않지만, 오히려 그 절제된 묘사 속에서 더 큰 공포와 아픔을 전달한다.
거리에 쏟아진 피, 죽어간 학생들, 외부 언론조차 통제하던 군사 정권.
이 모든 것들이 영화 속에선 아주 담담하게 그려지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날카롭고 무섭게 다가온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당시 시민들이 스스로 자신을 지키려 했다는 것이다. 무기가 없었던 그들은 시민군을 조직했고, 군인의 총 앞에서 돌멩이를 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너무 위대했다.
나 역시 광주에 대해 배운 적은 있지만, 제대로 체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택시운전사>는 그 감정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나는 중반부 이후로 거의 숨죽이며 봤고, 마지막에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가장 마음 아팠던 장면은, 김만섭이 광주에서 나오는 순간이다.
다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그는 힌츠페터의 카메라 필름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온 뒤, 그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손님을 태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의 눈에 광주의 기억이 깊이 남았다는 걸.
그리고 관객 역시 그 기억을 안고 영화관을 나서게 된다.

역사를 움직인 건 결국,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였다
<택시운전사>는 말한다.
영웅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목격하고 행동한 사람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너무도 평범한 한 택시운전사였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진짜 힘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광주를 단지 ‘과거의 사건’으로 볼 수 없었다.
이건 아직도 진행 중인 이야기고, 여전히 우리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김만섭이라는 인물은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 있다.
처음엔 무지했고, 두려웠고, 도망치려 했지만, 끝내 돌아섰다.
그 한 발자국이 역사를 바꾼 것이다.
그리고 힌츠페터라는 인물은, 진실을 기록하고 남긴 이 시대의 ‘기억의 수호자’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날을 ‘추측’과 ‘전해 들은 이야기’로만 알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그날,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택시운전사>는 단순한 감동 실화가 아니다.
그건 기억이고, 경고이고, 그리고 다짐이다.
다시는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다시는 진실이 묻히지 않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김만섭’처럼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잃지 않기 위해.
나는 이 영화를 인생 영화 중 하나로 꼽는다.
그 감정의 여운이 지금도 내 안에서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잊지 않을 것이다.
그 날, 그 사람들, 그 진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