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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고통을 감춘 섬 — 그곳에서 벌어졌던 진짜 이야기
    2. 생존이냐 양심이냐 — 절박함 속에서 드러나는 선택의 무게
    3. 잊지 않는 자들이 만든 희망 — 함께여서 가능했던 탈출

    침묵의 역사, 인간의 선택, 기억을 건 탈출 — 영화 '군함도' 다시 보기
    침묵의 역사, 인간의 선택, 기억을 건 탈출 — 영화 '군함도'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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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펙터클을 넘어선 기억의 서사

    영화 <군함도>를 본다는 건 단지 한 편의 영화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이 영화를 마주하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묵직하게 가라앉는다. 군함도는 단지 영화의 배경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오래 외면해온 역사적 실존 공간이다. 이름도, 사연도, 기록도 제대로 남지 못한 수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던 그곳을, 이제야 영화로라도 마주한 셈이다.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솔직히 스펙터클에만 눈을 빼앗길까 걱정했었다. 강렬한 시각효과, 액션,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전개. 하지만 영화가 중반을 넘기면서 느꼈다. 이 이야기는 단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기억해야 할 이야기라는 것을.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단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택'.

    <군함도>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선택’한다. 강옥은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비굴하게 굴고, 박무영은 작전을 위해 감정을 접는다. 최칠성은 말없이 버티다 결국 폭발하고, 말순은 딸을 지키기 위해 분노한다. 그 선택들은 때로는 이해되고, 때로는 비난받지만, 어느 하나도 가볍게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전쟁이라는 비극 앞에서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는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대단하다고 느낀 건 바로 그 지점이었다. 누군가를 영웅으로, 누군가를 악인으로 규정하기보다는, 모두가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걸 보여줬다는 점.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과연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런 질문이 오래 남는 영화는 흔치 않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군함도> 속에서 내가 가장 강하게 느낀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풀어보려 한다. 첫째,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고통의 섬에 대한 이야기. 둘째, 생존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복잡한 선택. 셋째,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연대. 이 영화는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기억에 대한 의무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침묵의 역사, 인간의 선택, 기억을 건 탈출 — 영화 '군함도'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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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통을 감춘 섬 — 그곳에서 벌어졌던 진짜 이야기

    군함도, 또는 하시마 섬. 겉으로 보기엔 현대화의 상징이고, 일본 산업화의 흔적이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어두운 역사가 깊숙이 박혀 있다. 조선인 강제징용이라는 사실. 수많은 이들이 가족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그곳에 끌려가, 이름도 없이 죽어갔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군함도>는 이 감춰진 진실을 들춰낸다. 일본 정부가 쉬쉬하고, 국제 사회가 주목하지 않았던 그 고통을, 영화는 시각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폭발시킨다. 무너진 갱도, 탄광의 분진, 땀과 피와 공포로 가득 찬 공간. 그것은 단지 ‘과거’의 공간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그 기억을 어떻게 다루고 있느냐를 되묻는 ‘현재’의 질문이다.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건 장소가 아니라 망각’이라는 걸 느꼈다. 우리가 잊는 순간, 진실은 사라지고, 고통은 반복된다. <군함도>는 그걸 막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다. 단지 분노를 유도하려는 게 아니라, ‘당신은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주 오래도록 남는다.


    침묵의 역사, 인간의 선택, 기억을 건 탈출 — 영화 '군함도'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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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생존이냐 양심이냐 — 절박함 속에서 드러나는 선택의 무게

    전쟁은 사람을 비극의 중심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그 비극 속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남게 되는가다. <군함도>는 그 질문을 집요하게 던진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극단적인 상황에서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코 선악의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는다.

    강옥은 악단장이라는 신분으로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며 살아간다. 동시에 그는 조선인 동료들을 보호하기보단, 일본 측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를 욕하겠지만, 나는 그의 고통도 이해가 갔다. 그는 딸을 지키고 싶었고, 그렇게라도 살아남아야 했다. 그것이 얼마나 처절한 선택이었는지를 영화는 너무도 섬세하게 보여준다.

    박무영은 명확한 임무가 있는 인물이다. 독립군으로서 이 섬을 폭파하고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이 그의 목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대의보다 앞선 것은 ‘개개인의 고통’이었다. 나는 그의 변화가 이 영화의 윤리적 기준점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항상 이상적인 선택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다. <군함도>는 이상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런 태도가 나는 오히려 더 감동적이었다. 이 영화는 인간의 추함과 고귀함을 동시에 포착한다.


    침묵의 역사, 인간의 선택, 기억을 건 탈출 — 영화 '군함도'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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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잊지 않는 자들이 만든 희망 — 함께여서 가능했던 탈출

    이 영화의 마지막은 ‘탈출’이다. 단지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억압과 침묵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액션으로 보기 어렵다. 그것은 절망 속에서 사람들이 연대하고, 함께 희망을 만들어낸 집단적 의지의 결과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아무도 혼자서는 탈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던지고, 누군가가 희생하고, 어떤 이는 뒤를 지켰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우리가 함께해야 살 수 있다’는 걸 체감한다. 이 영화는 결국 ‘연대’라는 메시지로 귀결된다.

    탈출에 성공한 이들이 자유를 얻었다고 해도, 그들이 겪은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이 지점이 참 슬프면서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고통은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되고, 공유되며,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막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군함도>의 탈출은 그래서 ‘현재를 향한 외침’이다. “이 역사를 잊지 마라.”


    침묵의 역사, 인간의 선택, 기억을 건 탈출 — 영화 '군함도'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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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은 살아 있는 사람의 책임이다

    영화 <군함도>를 보고 나서 나는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지나치게 감정적이라 말할 수도 있고, 역사적 논란이 섞인 허구라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목적은 분명하다. 기억하자는 것, 그리고 외면하지 말자는 것.

    기억은 무겁다. 마주하는 것도 어렵고, 다루는 건 더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그 무게를 견디지 않으면, 더 이상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영화가 아니라면 어쩌면 평생 몰랐을 이야기, 그 이야기를 우리는 단지 한 편의 영화로 넘기지 말아야 한다.

    <군함도>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용기 있는 시도였다. 보편적인 감정에 기대지 않고, 구체적인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곧 현재를 바르게 살아가는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다음 세대에게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할 것인가. 그것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군함도>는 과거의 상처지만, 그 상처를 들춰야 우리는 지금을 제대로 살 수 있다. 나는 이 영화가 오래도록 회자되었으면 한다. 불편했기 때문에, 진심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