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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과거에서 온 사나이 — 전우치의 매력과 전설
- 시대를 넘는 유쾌한 히어로물 — 전우치식 정의란 무엇인가
- 판타지와 현실의 절묘한 접점 — 장르를 넘나드는 연출의 힘
전통과 현대를 뒤섞은 유쾌한 판타지 히어로물
영화 <전우치>는 처음 봤을 때보다 시간이 지나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개봉 당시에는 한국형 히어로물이 낯설게 여겨졌고, 사극과 현대극이 섞인 독특한 구성이 호불호를 갈랐다. 하지만 다시 보니 이 영화가 보여준 유쾌함과 실험정신은 오히려 지금의 트렌드보다 한발 앞서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전우치>는 그 자체로 장르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며, 관객에게 새로운 재미를 던져주는 영화였다.
나는 특히 이 영화가 '판타지'라는 장르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한국적인 색채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점이 인상 깊었다. 주인공 전우치는 조선시대의 도술을 부리는 도사로, 귀신을 잡고, 세상을 구하려는 사명을 가진 존재지만, 동시에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장난꾸러기다. 이런 전우치가 현대에 와서 스마트폰과 자동차, 초고층 빌딩을 만나 당황하는 장면들은 유쾌하면서도 메시지를 던진다. 무엇이 과연 진짜 ‘현대적’ 정의인가에 대한 질문 말이다.
강동원이 연기한 전우치는 한마디로 '천방지축'이다. 그저 멋있는 히어로가 아니라, 능청스럽고 자유로운 캐릭터다. 그렇기에 전통적인 영웅의 무게감 대신, 사람 냄새 나는 히어로의 얼굴을 보여준다. 나는 이 점에서 이 영화가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졌고, 당시로선 꽤나 파격적인 시도라고 느꼈다.
또한 최동훈 감독의 특유의 재치 있는 대사와 속도감 있는 연출, 그리고 긴장과 유머를 오가는 균형감은 <전우치>를 한층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이 영화는 단순히 판타지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넘나드는 ‘정의’에 대한 유쾌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지금부터는 <전우치>라는 작품이 내게 왜 특별하게 다가왔는지를 세 가지 관점에서 풀어보려 한다. 첫째는 조선의 도사 전우치라는 캐릭터 자체의 매력, 둘째는 시대를 넘나들며 보여준 새로운 히어로의 형상, 셋째는 장르적 실험이 만들어낸 한국형 판타지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1. 과거에서 온 사나이 — 전우치의 매력과 전설
전우치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기보단 전설 속에 존재하는 이야기꾼 도사다. 하지만 영화 속 전우치는 단순히 '도술을 부리는 영웅'이 아니라, 어딘가 허술하고 철없는 매력을 가진 인물이다. 나는 이 점이 정말 흥미로웠다. 완벽한 능력자가 아니라, 실수도 하고, 욕망도 가진 인간적인 면모가 있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강동원은 이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소화해냈다. 도술로 적을 제압할 때는 영웅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엔 ‘잘난 척하고 싶다’는 유치한 자존심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런 인간적인 욕망이 오히려 그를 더 친근하게 만든다. 전우치는 단지 귀신을 때려잡는 히어로가 아니라, 현대에 살아도 어딘가 어울릴 것 같은 ‘친구 같은 영웅’이었다.
이런 전우치의 매력은 그가 현대 사회를 겪으면서 더 빛난다. 익숙하지 않은 문물 앞에서 허둥지둥하지만, 결국 자신의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해낸다. 나는 이 과정이 단지 웃음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본질’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을 구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마음은 여전하다는 메시지 말이다.
그렇기에 전우치는 단순한 판타지 캐릭터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필요한 유쾌한 영웅상이다.
2. 시대를 넘는 유쾌한 히어로물 — 전우치식 정의란 무엇인가
<전우치>는 단지 조선의 도사가 현대에 왔다는 흥미로운 설정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영화는 그 설정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전우치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싸우지만, 그 정의는 꼭 엄숙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때로는 사적인 분노에서 출발하기도 하고, 때로는 장난처럼 시작되기도 한다.
나는 이 부분이 정말 좋았다. 우리 사회가 기대하는 ‘정의’는 늘 무겁고 고결하지만, 현실 속 정의는 아주 작은 사건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전우치의 방식은 바로 그런 일상적인 정의의 감각을 보여준다. 나쁜 놈을 보면 못 참는 마음, 약자를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 이게 바로 우리가 잊고 있었던 히어로의 본질 아닐까.
현대 사회는 영웅을 원하면서도, 그 영웅이 너무 진지하길 바란다. 하지만 전우치는 웃기고 가볍지만, 그 안에 진짜 정의감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유쾌한 정의’의 태도가 영화 전반에 깔려 있어서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무거운 주제를 이렇게 가볍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영화는 흔치 않다.
그래서 <전우치>는 시대를 넘나드는 이야기이자, 모든 시대에 통하는 가치에 대한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3. 판타지와 현실의 절묘한 접점 — 장르를 넘나드는 연출의 힘
이 영화가 특히 놀라웠던 건, 사극과 현대극, 판타지와 액션, 코미디와 철학까지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과감하게 섞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과감한 시도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감탄했다. 최동훈 감독은 그런 ‘장르 융합’에 탁월한 감각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
전우치가 현대 도심 한복판에서 도술을 부릴 때, 그 장면은 촌스럽지 않고 세련되다. CG는 당시 기준으로도 꽤 훌륭했고, 무엇보다 그 연출의 리듬감이 좋았다. 액션이 단순히 싸움이 아니라 ‘연희’처럼 보이기도 하고, 도술은 마법처럼 표현되면서도 한국적인 색채를 유지한다. 나는 이 균형이 너무 인상 깊었다.
또한,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 역시 장르를 넘는다. 단지 판타지나 히어로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과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 자신만의 정의를 가지고 움직이고, 그 정의가 충돌할 때 갈등이 생긴다. 이 구조는 현실 정치나 사회 갈등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결국 <전우치>는 장르적 혼합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이야기 전달을 실현한 작품이다.
시대를 건너온 도사,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유쾌한 영웅
나는 <전우치>를 단순히 재미있는 영화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이 있고,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으려는 용기가 있다. 무엇보다도 ‘정의’라는 단어를 너무 무겁지 않게, 그러나 진심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전우치라는 캐릭터는 도술을 쓰고, 귀신을 퇴치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영웅이다. 하지만 그가 진짜로 대단한 건,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때로는 자기 이익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히어로의 조건 아닐까.
이 영화는 한국적 판타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서양식 히어로가 아닌, 우리만의 이야기와 정서를 기반으로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지금의 한국 영화계에도 큰 의미를 던져준다.
나는 <전우치>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조명되었으면 한다. 웃고 즐기는 와중에도 우리가 놓쳤던 질문을 다시 던져주는 영화, 그래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영화. 그 유쾌하고, 능청스럽고, 때론 감동적인 도사의 이야기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전우치가 다시 나타나면, 세상이 조금은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 — 나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