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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속 가족, 자연의 경고, 인간의 이기심 ‘해운대’

by serion1 2025. 5. 17.
  1. 서로를 지키기 위해, 재난 속에서 다시 묶인 가족의 끈
  2. 인간이 무시한 자연의 경고, 그리고 결과
  3. 위기 속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심과 그 너머의 용기

재난 속 가족, 자연의 경고, 인간의 이기심 ‘해운대’
재난 속 가족, 자연의 경고, 인간의 이기심 ‘해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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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이 땅, 그 위에 오는 파도는 멀지 않다

영화 <해운대>는 개봉 당시 우리에게 낯설었던 장르,
즉 ‘국산 재난 영화’라는 틀을 처음으로 대중화시킨 작품이었다.
2009년, 국내에서 이렇게 본격적인 자연재해를 다룬 영화가 개봉한다는 건
그 자체로 화제가 되었고, 나 역시 큰 기대 없이 극장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막상 보고 나니 단순한 CG의 재미 이상으로,
영화가 내게 던진 감정적 충격과 질문의 여운은 꽤 오래갔다.

<해운대>는 제목 그대로, 부산의 해운대 해수욕장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쓰나미, 즉 대규모 해일의 위협이 중심 줄거리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물리적 재난을 보여주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는 가족, 연인, 갈등, 후회, 희생이라는
매우 인간적인 요소들이 밀도 있게 녹아 있다.

처음엔 이게 재난 영화인지 멜로 드라마인지 헷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 그 거대한 파도가 도심을 덮쳐오기 시작하는 순간
모든 인물들이 드러내는 감정과 행동은,
결국 우리가 위기 앞에서 얼마나 인간적인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이 영화가 단순한 파괴의 스펙터클을 넘어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무시해왔는가,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인가
묵직하게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자 김휘(박중훈 분)가 수차례 쓰나미를 경고하지만
관료와 정치인들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뉴스 속에서 너무 자주 보는 모습 같아 소름이 끼쳤다.

<해운대>는 단지 놀라운 CG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그건 우리가 사는 땅,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경고이자 회상이며 바람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단순한 재난 액션물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건 분명 사람과 삶,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이제부터 <해운대>가 내게 남긴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재난 속 가족, 자연의 경고, 인간의 이기심 ‘해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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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로를 지키기 위해, 재난 속에서 다시 묶인 가족의 끈

이 영화의 중심에는 사실 ‘재난’이 아니라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가족이라는 존재가 어떤 상황에서든 서로를 향해 움직인다는 진심이었다.

만식(설경구 분)은 해운대에서 생선을 팔며 딸과 살아간다.
그는 아내 연희(하지원 분)와 과거에 이혼했고,
여전히 미련과 애틋함을 품고 살아간다.
두 사람의 관계는 서툴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쓰나미가 도시를 덮치고, 생사가 오가는 그 순간,
만식은 가장 먼저 연희와 딸을 찾는다.

이 장면에서 나는 무언가 깊은 감정을 느꼈다.
평소엔 사소한 갈등과 거리감에 서로를 외면하고 살지만,
죽음 앞에서는 그 모든 게 사라진다.
그 순간에야 우리는 알게 된다.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서로에게 무심했는지를.

비단 만식 가족뿐 아니라,
영화 속의 또 다른 가족들,
예컨대 김휘와 그의 옛 연인 유진(엄정화 분),
그리고 그의 딸 지민까지도
서로를 향해 어떤 방식으로든 감정의 손을 뻗는다.

재난이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은
사람들 사이에 끊어진 실타래를
다시금 감고 엮는 매개가 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내 가족을 떠올렸다.
바쁘다는 이유로, 감정 표현이 서툴다는 이유로
몇 달째 통화 한 번 못 하고 지낸 어머니.
어쩌면 우리는 진짜 위기가 오기 전까지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 건 아닐까?

<해운대>는 그걸 너무 아프게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도 말해준다.


재난 속 가족, 자연의 경고, 인간의 이기심 ‘해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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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이 무시한 자연의 경고, 그리고 결과

영화에서 김휘는 기상청 출신의 해양 지질학자다.
그는 과거 쓰나미의 참상을 겪었고,
이번에 다시 동해 해저에서 위험한 단층 이동이 감지되자
수차례 경고를 외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듣지 않는다.
그저 ‘여름 피서철 해운대 특수’를 막을까 봐
관료들은 발표를 미루고, 언론도 조용히 덮으려 한다.

이 장면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무서울 정도였다.
과학자들의 경고가 무시당하고,
정치적 판단이 생명보다 앞서며,
결국 모든 게 늦어버리는 것.

그리고 나는 이걸 단지 영화 속 이야기로만 느낄 수 없었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경고’를 무시해왔다.
기후 위기, 지진, 폭염, 전염병…
그 경고는 실제로 우리에게 다가왔고,
우리는 늘 사후에야 대응했다.
그리고 그 피해는 늘 ‘평범한 사람들’의 몫이었다.

<해운대>는 이런 점에서 재난 영화가 아닌, 경고 영화였다.
그것도 아주 명확한 목소리로 말이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무시했다.”

자연은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징후는 언제나 보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경제 논리’나 ‘정치적 판단’으로 밀어내는 순간,
그 대가는 너무나도 거세게 돌아온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뉴스에서 ‘이상 고온’, ‘해수면 상승’, ‘해일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
그저 스쳐 지나가던 눈빛이 조금은 바뀌었다.
그게 단지 남의 일이 아니라,
내가 사는 이 땅에서 정말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란 걸,
이 영화는 너무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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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위기 속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심과 그 너머의 용기

재난은 참 아이러니한 감정들을 동반한다.
서로 도와야 하는 순간에도,
누구보다 먼저 살아남기 위해 문을 닫는 사람들.
<해운대> 속에서도 그런 인간 군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도시 전체가 무너지고,
건물과 거리가 잠기고,
사람들은 자신만을 위해 도망친다.
어떤 이는 문을 닫고,
어떤 이는 도움을 구하는 사람을 외면한다.

하지만 이 속에서도 **눈에 띄는 건 결국 ‘누군가의 용기’**였다.

만식은 딸과 아내를 구하기 위해
거대한 건물 붕괴 속으로 몸을 던진다.
김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고를 외치기 위해
자신의 안위를 포기하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무명의 구조대원들은
위험한 장소로 스스로 뛰어든다.

이 장면들은 실제 현실에선
기억되지 않는 존재들이지만,
영화는 그들을 조명한다.
그리고 말한다.
“진짜 인간은 위기에서 나타난다.”

나는 이 지점이 너무 좋았다.
<해운대>는 인간의 이기심을 비판하면서도,
그 이면에 있는 희생과 연대의 가능성을 놓지 않는다.

재난이 모든 걸 파괴하지만,
그 속에서도 누군가는 남는다.
누군가는 도와주고,
누군가는 기억하며,
누군가는 삶을 이어간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사람들이 다시 모래사장에 앉아 있는 모습이
그토록 뭉클했던 것이다.


재난 속 가족, 자연의 경고, 인간의 이기심 ‘해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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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언제든 온다, 우리가 지켜야 할 건 사람이다

<해운대>는 오락적인 재난 영화의 외형을 가졌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너무도 진지한 영화다.
그건 단지 “파도가 온다”는 경고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무시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묻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 영화를 본 후,
해운대를 다시 찾았을 때
마냥 밝고 유쾌한 바닷가로만 느끼지 못했다.
그 넓은 백사장과 평화로운 파도 너머에,
언제든 모든 것을 삼켜버릴 수 있는 현실이 있다는 걸
영화가 너무 강하게 남겨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영화가 끝나고도 내내 마음에 남았던 건
그 속에서 서로를 안고 눈물 흘리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영웅이 아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그 순간 ‘사람답게 행동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영웅’을 기다린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모두가 조금씩 용기를 낼 수 있는 사회라는 것.
<해운대>는 그걸 우리에게 보여줬다.

재난은 언제든 올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을 지켜준 영화.

<해운대>는 그래서 단지 무너지는 도시의 영화가 아니라,
끝까지 버티고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 덕분에,
나는 오늘도
내 가족과 주변 사람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