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쾌한 분노: 통쾌한 한 방의 미학
- 현실의 풍자: 익숙한 악인들이 보여주는 불편한 사실
- 정의의 유턴: 흔들려도 반드시 돌아오는 정의
영화 <베테랑>은 단순한 범죄 액션물이 아니다. 이 작품은 “속 시원하다”는 관객의 반응만으로 설명되기엔 그 이면에 깔린 사회적 메시지가 상당히 묵직한 영화다. 나는 <베테랑>을 극장에서 봤고, 처음에는 그냥 오락적인 재미만 기대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 영화가 보여준 세계와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느끼게 되었다.
<베테랑>은 강력반 형사 서도철(황정민)과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의 대결 구도를 통해 이야기를 펼친다. 이 설정만 봐도 익숙한 한국 사회의 갈등 구도가 보인다. 권력 있는 자와 없는 자, 법 위에 선 자와 법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자.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가 느끼는 ‘분노’와 ‘무기력’이 교차하는 풍경이 눈에 선하다. 이 영화는 그 분노를 통쾌하게 해소하면서도, 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놓치지 않고 짚어낸다.
황정민이 연기한 서도철은 전형적인 베테랑 형사이자, ‘정의감으로 뭉친 무식한 열혈’ 그 자체다. 반면 유아인의 조태오는 아주 현대적인 악역이다. 전통적인 악당처럼 거칠거나 폭력적이지 않다. 그는 오히려 너무도 젊고 세련됐으며, 감정 기복 없는 냉소와 권력을 휘두른다. 나는 조태오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가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현대적 악’의 얼굴을 보게 됐다.
<베테랑>이 흥행에 성공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나는 이 영화가 보여준 ‘정서의 공감대’가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관객들은 도철의 일방적인 펀치보다, 그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는 과정에 더 감동했다.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단순히 통쾌하다는 감정보다, 뭔가 울컥하는 감정이 더 오래 남았던 기억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베테랑>을 통해 세 가지 주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인 ‘유쾌한 분노’에 대해, 둘째는 영화 속 재벌 캐릭터와 상황들이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현실 풍자’에 대해, 마지막으로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정의가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정의의 유턴’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유쾌한 분노: 통쾌한 한 방의 미학
<베테랑>은 분노를 유쾌하게 만드는 방식에 능한 영화다. 보통 현실을 비추는 영화는 무겁고 진지하게 접근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 반대로 갔다. 관객의 화를 유머와 통쾌한 액션으로 승화시켜주면서도, 그 감정이 결코 가볍지 않게 만들어줬다. 나는 이 감정 설계가 <베테랑>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서도철이라는 인물은 무식하고 과격하지만, 그 안에 누구보다 깊은 인간미와 정의감이 있다. 그의 캐릭터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관객이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는 수많은 부조리 앞에서 할 수 없는 행동을, 도철은 거리낌 없이 한다. 그게 바로 ‘영화가 대신 날려주는 한 방’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영화 중반부 한 사건이 터진 뒤 도철이 독한 결심을 하고 조태오 일당을 추격하는 과정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단순한 수사물이 아니라, 일종의 분노 해방극으로 전환된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관객의 억눌린 감정을 건드리고, 그걸 터뜨린다. 나 역시 그 장면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주먹을 쥐고,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그래, 한 방 먹여줘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이런 유쾌한 분노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했다는 점이다. 복잡한 논리나 과거 서사 없이, 단지 누가 봐도 부당한 상황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인물 하나로 모든 정서를 이끌어낸다. 그게 서도철이다. 그는 마치 우리 마음속에 있는 ‘선의의 화신’처럼 움직인다. 현실에서 못하는 것을 대신 해주는 대리만족, 그걸 가장 통쾌하게 표현한 영화가 바로 <베테랑>이었다.
2. 현실의 풍자: 익숙한 악인들이 보여주는 불편한 사실
<베테랑>에서 조태오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권력의 얼굴’ 그 자체다. 그는 폭력적이지 않다. 오히려 더 무섭게 잔인하다. 그는 웃으며 누군가를 망가뜨리고, 자신의 힘을 너무도 당연하게 행사한다. 그리고 아무런 죄의식이 없다. 나는 이 캐릭터를 보며 실제 사회에서 벌어졌던 많은 사건과 인물들이 떠올랐다.
조태오는 영화 속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가 보여주는 권력의 모습은 결코 허구가 아니다. 돈이 법 위에 군림하고, ‘사과’가 아닌 ‘합의’로 모든 죄를 덮는 방식.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장면이다. 그동안 수많은 영화가 부패한 권력과 싸우는 이야기를 다뤘지만, <베테랑>은 이 악의 본질을 아주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불편하다. 그리고 그래서 더 진실하다.
나를 가장 분노하게 만든 장면 중 하나는, 조태오가 자기가 벌인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웃는 장면이었다. 그는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처리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상황을 바라본다. 이 장면에서 나는 그가 단순한 악역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무감각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불편함은 오히려 영화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관객은 조태오에게 분노하고, 그가 무너지는 과정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는 알고 있다. 현실에선 이런 일이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 영화가 그 사실을 일부러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현실 풍자’라고 느꼈다.
3. 정의의 유턴: 흔들려도 반드시 돌아오는 정의
<베테랑>은 “정의는 결국 돌아온다”는 믿음을 전한다. 이 말이 얼마나 촌스럽고, 때로는 공허하게 들릴 수 있는지는 나도 안다. 현실에선 힘 있는 자가 승리하고, 정의가 외면당하는 일이 많으니까. 하지만 <베테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가 끝내 돌아오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것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위로이자 희망이다.
서도철은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가장 비현실적인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한 번도 ‘포기’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실체가 뻔한 상대를 두고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게 바로 정의의 힘이다. 완벽하지 않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의지. 나는 이 모습이 너무도 인상 깊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도철이 조태오를 향해 던진 마지막 대사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넌 사람을 건드렸어.” 이 짧은 한 마디가 모든 걸 설명한다. 법 이전에, 우리는 사람이고, 사람 사이엔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이다. 그 선을 넘은 자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주 오래된 감정을 떠올렸다. 바로 ‘정의감’이다. 어릴 적엔 당연하게 여겼던 그것이, 어른이 되며 점점 무뎌졌다는 걸 깨달았다. <베테랑>은 나에게 그 정의감을 다시 상기시켜줬다. 세상이 아무리 엉망이어도, 그래도 정의는 돌아올 수 있다고. 그 유턴이 아무리 늦어도, 반드시 도착한다고.
<베테랑>은 오락영화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는 무거운 질문과 뜨거운 감정이 녹아 있다. 내가 이 영화를 특별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단지 통쾌한 장면들 때문이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오래 남는 건,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외면해온 질문들에 대한 강한 응답 때문이다.
이 영화는 분노를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분노를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왜 우리는 이토록 불합리한 구조에 익숙해졌는가, 왜 악인이 미소 짓는 장면을 보며 무력감을 느끼는가, 왜 정의라는 단어가 점점 낡은 구호처럼 들리는가. <베테랑>은 그 모든 질문에, 말이 아닌 액션으로 답한다.
그리고 나는 그 점에서 이 영화가 진짜로 용기 있는 작품이라고 느낀다. 유쾌함과 메시지를 동시에 잡는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해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 이야기 안에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의는 멀리 있지 않다. 단지, 우리가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이 완벽할 순 없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악을 다 무너뜨릴 수도 없다. 하지만 <베테랑>은 말한다. 단 한 명의 의지가, 단 하나의 진심이 세상을 조금은 바꿀 수 있다고. 나는 그 말을 믿고 싶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이 그 믿음을 다시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한 오락 그 이상이다.
우리 모두의 분노가 결국 ‘정의의 방향’으로 유턴할 수 있도록 돕는, 아주 힘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