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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무너진 건 터널이 아니라 믿음 — 잔인할 만큼 현실적인 재난의 얼굴
    2. 사랑이라는 생존 본능 — 관계를 지탱한 감정의 힘
    3. 인간을 남기다 — 묻히지 않은 존재로 살아남기까지

    무너진 구조, 흔들리는 관계, 끝내 살아낸 존재 — 영화 '터널'의 진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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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짐 이후에도 ‘사람’을 말하는 영화

    영화 <터널>은 시작부터 불쾌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평범한 남자 한 명이 터널에 갇힌다. 그 자체로 충격적이진 않다. 그런데 영화는 그 뒤에 벌어지는 '사회의 움직임'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저 상황에서 끝까지 살아있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이 영화가 특별한 건 단지 고립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생존기가 아니라, 그 고립이 만들어내는 파문 때문이다. 정수라는 인물은 단지 구조 대상이 아니다. 그는 가족의 중심이고, 사회의 일원이며, 때로는 정치적 소비물이기도 하다. 그의 생존은 하나의 '이슈'가 되고,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날이 갈수록 변화한다. 나는 이 지점에서 <터널>이 단순한 장르 영화가 아니라, 시대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회 영화라는 걸 느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정수의 아내 세현의 태도 변화였다. 처음에는 남편의 생존을 믿고 소리를 지르던 그녀가, 점차 체념과 분노, 끝내 담담한 절실함으로 변해가는 과정. 그건 사랑의 감정이기도 했지만, 결국 ‘살아 있는 사람으로 남게 하려는’ 안간힘처럼 보였다. 그녀는 남편이 묻히지 않길 바랐다. 단지 터널 속에가 아니라, 세상 속 기억에서 말이다.

    이와 함께, 구조대원 대경의 현실적인 고뇌도 뭉클했다. 그는 체제의 논리와 인간적 양심 사이에서 끝까지 싸운다. 때로는 욕먹고, 때로는 무시당하지만, 끝내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그 모습에서 ‘사람’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게 있는지를 다시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이 영화가 내게 던졌던 세 가지 감정적 메시지를 풀어보려 한다. 첫째는 ‘믿음의 붕괴’가 어떻게 절망을 만드는지, 둘째는 ‘감정’이 어떻게 구조보다 더 강한 동력이 되는지, 셋째는 ‘살아남는다’는 것이 단순히 숨 쉬는 일이 아닌 이유다. <터널>은 한 남자의 고립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언제든 마주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한 경고이자 위로였다.


    무너진 구조, 흔들리는 관계, 끝내 살아낸 존재 — 영화 '터널'의 진짜 이야기
    무너진 구조, 흔들리는 관계, 끝내 살아낸 존재 — 영화 '터널'의 진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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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너진 건 터널이 아니라 믿음 — 잔인할 만큼 현실적인 재난의 얼굴

    재난이 무서운 이유는, 그 순간 ‘평범함’이 통째로 무너진다는 데 있다. 영화 속 정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그가 갑자기 비극의 중심에 선 이유는 없다. 단지 지나가던 길이 무너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 우연한 사건이 만든 파장은 점점 커진다. 사람들은 처음엔 분노하고, 금방 동정하고, 곧 외면한다.

    그 속도감이 가장 무서웠다. <터널>은 이 ‘태도의 흐름’을 정확히 짚는다. 뉴스가 식고, 구조 논의가 길어지고, 정치권이 입장을 밝히는 사이, 정수는 점점 사라진다. 마치 구조 대상이 아닌, 처리 대상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뼈아팠다. 누군가의 삶이 그렇게 취급될 수 있다는 현실 자체가 너무 잔혹했다.

    영화는 말한다. 무너진 건 터널이 아니라, ‘신뢰’라고. 사회가 개인에게 해야 할 최소한의 응답, 사람으로서의 존중, 그것들이 하나씩 무너질 때 고립은 완성된다. 나는 이 영화가 보여준 재난의 얼굴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보는 내내 괴로웠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야 할 길이었다.


    무너진 구조, 흔들리는 관계, 끝내 살아낸 존재 — 영화 '터널'의 진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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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랑이라는 생존 본능 — 관계를 지탱한 감정의 힘

    <터널>은 구조에 성공하는 영화지만, 그 성공을 이끈 건 기술이 아니다. 그건 관계, 그리고 감정이었다. 세현은 정수가 살아 있다는 걸 믿는다. 모두가 포기하라 말해도, 그녀는 집 앞 조명 하나를 꺼뜨리지 않는다. 그 믿음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본능에 가까운 감정의 흐름이었다.

    나는 이 감정이야말로 진짜 구조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구조대장이 포기하지 않은 것도, 단순한 임무감이 아니라 ‘끝까지 믿어야 한다’는 어떤 인간적인 직관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수 역시, 아내의 존재를 기억했기에 견뎠다. 초콜릿 하나, 물 한 모금보다 더 중요한 건 ‘누군가 날 기다린다’는 믿음이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강한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다. 사랑은 생존의 조건이자, 포기하지 않게 하는 에너지다. 나는 그 점에서 <터널>을 구조 영화가 아니라 ‘관계 영화’라고 부르고 싶었다. 결국 사람을 구한 건 사람의 감정이었다.


    무너진 구조, 흔들리는 관계, 끝내 살아낸 존재 — 영화 '터널'의 진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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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인간을 남기다 — 묻히지 않은 존재로 살아남기까지

    정수가 구조된 장면은 단순한 클라이맥스가 아니다. 나는 그 장면을 ‘존재의 회복’이라고 느꼈다. 무너진 콘크리트 속에서 꺼내진 건 단지 한 사람의 몸이 아니라, ‘사람이 아직 사회에 의미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가 구조되지 못했다면, 사람들은 그를 점점 잊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하나의 존재를 흘려보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보여주는 건 ‘존재의 명확함’이라고 본다. 어떤 사람도, 어떤 이유로도 그냥 묻혀선 안 된다. 잊히는 건 단지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의 문제다. 영화는 그것을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말한다.

    정수는 끝내 살아남았지만, 그의 생존은 수많은 무기력과 타협의 틈을 뚫고 이루어진 것이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단지 ‘해피엔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건 ‘해피엔딩이 왜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무너진 구조, 흔들리는 관계, 끝내 살아낸 존재 — 영화 '터널'의 진짜 이야기
    무너진 구조, 흔들리는 관계, 끝내 살아낸 존재 — 영화 '터널'의 진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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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덕분에, 끝내 살아낸 이야기

    <터널>은 감정을 부풀리거나, 극적인 연출로 감동을 짜내지 않는다. 그래서 더 진하다. 이 영화는 아주 건조한 톤으로 시작해서, 끝까지 그 톤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람에 대한 신뢰’는 점점 짙어진다. 나는 이 영화가 보여준 감정의 농도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우리는 종종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포기한다. 시스템은 언제나 빠르게 돌아가야 하고, 어떤 일은 정리되어야 하며, 어느 순간은 잊혀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터널>은 말한다. “사람은 그렇게 정리되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이 말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절실하다고 느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 건 구조 장면이 아니다. 나는 세현이 꺼뜨리지 않은 조명을 기억한다. 어쩌면 그 불빛 하나가, 우리가 서로를 잊지 않게 만드는 마지막 끈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런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위로받았다.

    결국 <터널>은 구조 영화가 아니라, 사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나도, 당신도 언젠가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영화를 더 소중하게 만든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 이야기는 ‘끝내 살아낸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