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보다 무거운 것 — 기억이라는 이름의 짐
- 시작보다 어려운 끝 — 되돌아오는 용기
- 기록보다 강한 증명 — 생존자들이 말하는 진심
산을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려오기 위해 다시 산을 오른 사람들
<히말라야>라는 영화는 한 줄로 설명되기엔 너무 조심스러운 영화다. 한 사람의 죽음, 그리고 그를 향한 사람들의 기억, 그리고 또 한 번의 등정. 이 모든 게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간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분명 극적이다. 하지만 놀라운 건, 영화가 그 ‘목표’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히말라야>는 정상보다 ‘내려오는 길’을 더 정직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사람은 왜 산을 오르는가?”라는 질문 대신, “사람은 왜 죽은 이를 기억하려 애쓰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엄홍길 대장이 이끄는 히말라야 원정대는, 고인이 된 후배 박무택을 데려오기 위해 다시 히말라야로 향한다. 그들의 두 번째 등반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이해받기 어려운 선택이다. 누군가는 그걸 ‘감성적’이라고 하고, ‘비효율적’이라 할지도 모른다. 이미 죽은 사람을 데려오기 위해 목숨을 걸다니. 하지만 이 영화는 거기서 진짜 ‘인간’을 보여준다. 효율이 아니라 마음, 계산이 아니라 기억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가끔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 우리는 말한다. “잊지 않을게.”
그 말은 때론 위로고, 때론 약속이다. 그런데 그 말은 너무도 쉽게 잊힌다.
<히말라야>의 감동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잊지 않을게’라고 말한 뒤, 정말로 잊지 않았고,
기억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증명했다.
나는 이 영화가 위대한 이유는, 죽음을 슬프게 보여주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죽음’보다 ‘기억’을 말하고, ‘상실’보다 ‘책임’을 말한다.
우리는 너무 자주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이야기하지만,
이 영화는 살아남은 자의 ‘결심’과 ‘행동’을 통해,
그 죄책감을 넘어서는 법을 보여준다.
지금부터는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느꼈던 세 가지 감정선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째는 ‘기억이라는 무게’, 둘째는 ‘되돌아오는 길의 어려움’,
셋째는 ‘기록이 아닌 증명’이라는 키워드다.
<히말라야>는 누군가의 인생을 껴안고,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끝나고 나면 말없이 앉아 있게 된다.
숨은 천천히, 눈은 조금 뜨겁게.
1. 정상보다 무거운 것 — 기억이라는 이름의 짐
산을 오르는 건 체력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다시 그 산을 돌아보며 오르는 일은 마음이 더 힘든 일이다.
<히말라야>의 가장 묵직한 정서는 ‘기억’이다.
정상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곳엔 ‘무택’이 있다.
엄홍길은 그를 그냥 놓아둘 수 없었다.
그건 시신이 아니라, 함께 했던 기억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기억이라는 건 이상하다.
보통 사람들은 힘들고 아픈 건 잊으려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기억은 ‘존재의 증거’가 된다.
그가 살았고, 웃었고, 노력했고, 넘어졌다는 흔적.
엄홍길은 그걸 그대로 꺼내오기 위해 다시 산에 오른다.
영화는 그 기억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시신 수습이라는 잔인한 현실,
시체가 반쯤 묻힌 빙하,
하강한 산소와 체온 저하 속에서 그는 말없이 삽을 든다.
그건 의무가 아니다.
누구의 지시도 아니고, 보상도 없다.
단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 몸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오래된 친구 한 명이 떠올랐다.
그가 떠나고 5년쯤 되었을 때, 나도 말로는 기억한다고 했지만,
정작 그의 흔적을 직접 찾으러 간 적은 없었다.
그냥 내 마음속에 있다는 말로, 모든 걸 퉁쳤던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나를 조용히 불편하게 만든다.
“정말로 기억하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뭘 하고 있나요?”
그 물음은, 오래 남았다.
2. 시작보다 어려운 끝 — 되돌아오는 용기
보통 사람들은 ‘시작하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가장 어려운 건 끝까지 가는 용기,
더 어려운 건 끝에서 다시 돌아가는 용기다.”
엄홍길은 정상에 도달한 뒤 다시 산을 오른다.
그게 무슨 의미냐고 묻는다면,
그는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곳에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있으니까.”
<히말라야>는 흔히 말하는 영웅 서사가 없다.
히어로는 나오지만, 그는 칭송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의 책임’을 다할 뿐이다.
나는 이 부분이 이 영화의 품격이라고 생각했다.
산을 정복하고 내려오는 것도 힘들지만,
다시 그 고통을 되풀이하겠다고 말하는 건 더 큰 용기다.
그리고 실제로 돌아온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영화는 말없이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나도 내 삶을 돌아봤다.
나는 정말 끝까지 간 적이 있었나?
중간에 그만두고, 다음 걸로 넘어간 적이 더 많지 않았나?
나도 언젠가, 한 번쯤은 ‘끝까지 간다’는 선택을 해보고 싶었다.
그 끝이 무섭고, 슬프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말이다.
이 영화는 말한다.
끝이란 포기가 아니라,
책임의 완성이라고.
3. 기록보다 강한 증명 — 생존자들이 말하는 진심
히말라야 등반은 곧 기록이다.
몇 미터를 올랐는지, 어떤 코스를 탔는지, 누가 최초인지.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건 그런 ‘스펙’이 아니다.
그건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증명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엄홍길은 이미 산악계의 전설이다.
그가 다시 올라야만 했던 이유는 ‘기록 갱신’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살아서 책임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보통 ‘살아남은 사람’을 바라보며 축하하지만,
이 영화는 그 반대편을 보여준다.
살아남았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 무게를 짊어지고 어떻게 하루를 사는지를.
생존자는 말없이 무택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다.
“네가 못다한 걸 내가 끝낼게.”
이건 단순한 우정이나 동료애가 아니다.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책임이 되는 사람들.
<히말라야>는 그런 사람들을 아주 조용히, 하지만 단단하게 비춘다.
나는 그 장면에서 ‘살아 있는 나’를 다시 돌아봤다.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건,
누군가를 대신해 책임져야 할 일도 있다는 뜻일지 모른다.
그걸 진짜로 느끼게 해준 영화는 처음이었다.
한 사람의 선택이, 모두의 마음을 울린다
<히말라야>는 크게 울리는 영화가 아니다.
거대한 오케스트라도 없고, 멜로적 장치도 없다.
하지만 그 조용한 울림이 너무 오래 남는다.
왜냐하면 그 울림은 인공이 아닌, 진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산’을 다시 보게 됐다.
그리고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무턱대고 오르기보다, 내려오는 걸 더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
살아남은 걸 기뻐하기보다, 살아남았기 때문에 책임을 다하려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 만들어낸 서사가 바로 <히말라야>다.
사람은 늘 떠나고,
남겨진 자는 그 자리를 메우며 살아간다.
그건 인생의 구조고, 누구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자리를 그냥 잊지 않는다.
그 기억을 가지고 다시 돌아가고,
말없이 채워간다.
엄홍길은 그런 사람이다.
이 영화는 내게 한 가지 확신을 주었다.
“한 사람의 진심은 결국 모두의 마음을 울린다.”
그게 비효율적이고, 무모해 보여도 상관없다.
그 진심은 언젠가, 반드시 닿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 영화를 추천한다.
누군가의 얼굴이 문득 떠오를 때,
어떤 약속이 기억날 때,
혹은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공허할 때.
<히말라야>를 다시 본다.
그 안엔, 살아 있다는 게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지
다시 알려주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