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 형사 마석도의 업그레이드된 존재감
- 역대급 악당 강해상, 분노를 일으키는 절대 악
- 통쾌함과 유머, 액션의 리듬이 빚어낸 흥행 포인트
진짜 사이다 액션은 이렇게 터진다, '범죄도시2'가 보여준 한국형 범죄 영화의 진화
처음 <범죄도시> 1편이 나왔을 때만 해도, 이 시리즈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줄은 몰랐다. 특히 1편이 갖고 있던 리얼함과 로컬 감성, 그리고 윤계상이라는 강렬한 악역의 힘이 워낙 컸기 때문에, 후속작이 이를 뛰어넘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범죄도시2>는 그 벽을 단숨에 뚫고 나간다. 그 중심엔 역시나 마석도 형사, 마동석이 있다.
이번 영화는 단순한 범죄 소탕을 넘어서, 무대를 베트남까지 확장시키고, 글로벌한 악을 다루며 스케일 면에서 훨씬 커졌다. 하지만 영화는 여전히 ‘재미’와 ‘통쾌함’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진행하며 관객들에게 시원한 한 방을 안긴다.
나는 <범죄도시2>가 단순히 범죄 액션 영화가 아니라, 요즘 시대 대중이 원하는 정서를 정확히 건드린다고 생각했다. 현실이 팍팍하고 억울한 일 투성일수록, 스크린 속에서는 누군가가 시원하게 정의구현을 해주길 바라게 된다. 바로 그 역할을 마석도가 맡는다.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는, 하지만 그 주먹에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는 형사.
이번 작품에선 마석도의 강한 피지컬뿐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도 더 부각된다. 동료 형사들과의 케미, 피해자에 대한 연민, 그리고 악을 대하는 단호함까지. 예전보다 훨씬 입체적인 인물로 완성됐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건, **손석구가 연기한 ‘강해상’**이라는 악역이다. 그는 단순히 잔인한 것을 넘어서, 무감정한 공포를 안겨준다. 인간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냉혹한 악의 구현체. 그의 존재는 영화 전체에 긴장감을 심어주며, 마석도의 정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범죄도시2>는 액션과 유머, 감정과 폭력의 균형을 놀라울 정도로 잘 맞춘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게 진짜 통쾌한 영화지!" 하고 외치고 싶어진다. 특히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대중적 접근성과, 과하지 않지만 강한 메시지까지. 이 영화는 단순한 속편을 넘어, 한국형 액션 시리즈의 새로운 기준점을 만들어냈다.
이제부터 <범죄도시2>의 강점들을 세 가지로 나눠 깊이 있게 살펴보자.
1. 괴물 형사 마석도의 업그레이드된 존재감
마동석이 곧 마석도고, 마석도가 곧 <범죄도시>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2편에서 마동석은 이전보다 더 ‘무게감 있는 히어로’로 재탄생했다.
물론 그는 여전히 맨주먹으로 모든 걸 해결하고, 유머러스하게 대처하며, 위급한 상황에서도 절대 당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강한 형사로서의 모습 이상을 보여준다. 팀워크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로서, 리더십과 인격적인 면까지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범인을 잡을 때 보여주는 주먹질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다. 정의의 상징, 그리고 억울한 사람들을 대신한 분노의 표출로 읽힌다. 관객은 그 한 방 한 방에 감정을 실으며 쾌감을 느낀다. 이건 단순한 ‘액션’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 이입이 가능한 정의구현이기 때문이다.
마석도의 행동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다. 오히려 악당보다 더 단순하고 솔직하지만,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 손해를 보더라도 진실을 추구하고, 불법적인 권력과도 맞설 수 있는 용기. 이런 모습은 우리 사회가 너무나 그리워하는 이상적인 경찰의 모습이다.
또한 마동석의 연기는 익숙하지만 여전히 신선하다. 그는 근육만 키운 배우가 아니다. 미세한 표정 변화, 대사 처리, 그리고 캐릭터 간의 호흡까지 모두 계산돼 있다. 그래서 마석도는 영웅이지만, 너무 현실에서 먼 존재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정말 큰 장점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2편에서 마석도의 ‘인간미’가 더 보였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그는 고집 세고, 다혈질이지만, 피해자의 아픔에는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동료에게는 한없이 따뜻하다. 그게 바로 우리가 보고 싶었던 진짜 ‘공권력’의 모습 아닐까.
2. 역대급 악당 강해상, 분노를 일으키는 절대 악
<범죄도시2>에서 가장 놀라웠던 캐릭터는 단연 강해상, 손석구가 맡은 이 역은 ‘역대급 악당’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공기가 싸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강해상은 기존 악역처럼 허세 부리지 않는다. 그는 조용하고, 차분하며, 그래서 더 무섭다. 잔혹한 범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 살인의 순간에도 감정이 없다. 그 무감정이 관객을 오히려 더 공포에 빠뜨린다.
손석구는 이 캐릭터를 너무 잘 그려냈다. 그가 대사를 할 때마다, 눈빛만으로도 압박감을 전달한다. 그리고 그의 싸움 장면은 ‘난폭’이라기보단 ‘정확하고 냉정하다’. 인간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폭력성.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짜 악일지 모른다.
강해상이라는 악당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다. 그는 인간이 얼마나 비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는 마치 시스템 속에서 길러진 괴물처럼, 인간적인 흔적 없이 존재한다. 그래서 관객은 더욱더 마석도의 정의구현을 바랄 수밖에 없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소름 끼쳤던 장면 중 하나는, 강해상이 평범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악행을 저지를 때였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진심으로 분노했고, 동시에 ‘저런 악도 세상 어딘가엔 실제로 존재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강해상의 존재는 <범죄도시2>가 단순한 액션 오락 영화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관객은 단순히 싸움 구경을 하는 게 아니라, 정의와 악의 대결에 감정적으로 휘말리게 된다. 이게 이 영화의 진짜 힘이다.
3. 통쾌함과 유머, 액션의 리듬이 빚어낸 흥행 포인트
<범죄도시2>는 무겁기만 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우리는 몇 번이나 웃었고, 몇 번이나 환호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건 영화가 가진 ‘리듬감’ 덕분이다.
이 영화는 액션, 유머, 감정의 흐름을 교묘하게 배치해 긴장과 이완의 균형을 맞춘다. 예를 들어, 엄청난 액션 뒤에 터지는 유머 한 마디, 잔인한 사건 뒤에도 숨 돌릴 수 있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래서 관객은 지치지 않고, 오히려 더 집중하게 된다.
특히 마석도와 팀원들 간의 케미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 포인트다. 장이수가 맡은 장형사, 그리고 이주빈이 맡은 신입 형사까지. 각 캐릭터가 주는 유쾌함과 조화가 뛰어나다. 이 팀워크는 현실감을 높여주고,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액션 장면도 놀랍다. CGI에 의존하기보단 실제 타격감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마동석 특유의 묵직한 액션은 여전히 위력적이고, 촬영과 편집 또한 그 맛을 잘 살려준다. 액션의 타격감이 ‘살아있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나는 이 영화가 ‘한국형 액션’의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헐리우드 스타일의 스케일도 있지만, 그 안에 한국적 정서와 유머가 섞여 있어 더 친근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반복 관람까지 하는 게 아닐까.
결국 이 영화가 이토록 흥행할 수 있었던 건, 관객이 진심으로 원하는 걸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이다. 정의, 쾌감, 유머, 감동. 이 네 가지를 적절히 배합한 결과가 <범죄도시2>다.
속이 뻥 뚫리는 쾌감, 한국형 시리즈물의 새 기준
영화를 다 보고 나오는 길에 자연스럽게 이렇게 말하게 된다.
“이게 진짜 범죄 액션이지.”
<범죄도시2>는 단순히 잘 만든 속편이 아니라, 한국 영화 산업이 만든 ‘시리즈물의 새로운 표준’이다. 그 안에는 스토리, 캐릭터, 액션, 메시지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만든 게 없다.
가장 인상적인 건, 관객과의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완전히 몰입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마석도는 영웅 같지만 우리 주변에도 있을 것 같고, 강해상은 비현실적이지만 어쩌면 뉴스에서 볼 법한 인간형이다. 이 현실감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영화는 완벽한 밸런스를 이뤄낸다.
또한 이 영화는 분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해소의 기회를 제공한다. 정의롭지 못한 현실, 권력의 비겁함, 시스템의 무능. 이 모든 것들을 마석도의 주먹 한 방으로 뚫고 나가는 순간, 관객은 진짜 사이다를 마신 듯한 후련함을 느낀다.
나는 이런 영화가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단지 액션이 시원한 것뿐만 아니라, 관객의 정서를 깊이 이해하고 그것에 응답하는 영화. 그것이야말로 진짜 대중영화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범죄도시> 시리즈가 계속 이어진다면, 그건 단순한 숫자의 연장이 아니라, 시대를 반영하는 정의 구현의 상징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나는 그 다음 이야기도 주저 없이 보러 갈 것이다.
왜냐고?
마석도가 다시 한 번 ‘정의는 살아있다’는 걸 보여줄 테니까.